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6-AI와 인간 가치 포럼’에서 AI(인공지능)가 인간의 성장을 저해한다면 그 기술적 발전은 사회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석학들의 경고가 나왔다. 유영진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조직이 AI를 도입하는 방식을 ‘진공청소기형’으로 규정하며, 이런 방식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비용을 절감하지만 대체된 사람을 더 유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AI가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에게 보상만 제공하는 사회 구조가 정착될 경우, 경제성장 수치만 높아지고 가계소득과 일반 국민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 ‘유령 GDP(Gross Domestic Product)’의 극대화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이 ‘비계형(scaffolding) AI’다. 건설 현장에서 비계가 구조물의 확장을 지탱하듯, AI가 인간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역량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논지다. 그는 호주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반려견의 암 치료를 위해 생성형 AI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맞춤형 mRNA 백신을 제작한 사례를 들며, 이처럼 AI를 활용할 때 한 사람의 성장이 주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생성적 외부효과(generative externality)’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가 AI 주권을 개인 단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원칙을 정립하고, 기업은 주니어 직원에게도 도전적 과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간 역량 향상에 초점을 맞춘 AI 활용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의 신상규 교수는 인간을 기술에 의해 정의되는 ‘사이보그적 존재’로 규정하면서, AI에 사유를 외주화하고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방식이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AI 개발 방향이 기술 엘리트와 빅테크 기업 주도로 결정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며, AI 개발 과정에 민주적 가치를 내재화하고 교육에도 윤리·정치적 내용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AI로 인한 구조적 실업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직시하고 사회적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퓨리서치센터의 17개국 조사에서 한국인이 삶의 의미로 직업을 꼽은 비율이 6%로 최하위를 기록한 점을 언급하며, 역설적으로 한국이 탈노동 전환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적응할 여지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제기됐다. 권순일 업스테이지 최고전략책임자(CSO)는 AI가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해줄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AI 사용이 확산되면서 인간이 스스로 고민하는 경향이 옅어지고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훈 카카오 AI세이프티 리더는 AI가 유발하는 위협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오용 문제라고 진단하며, 특히 생성형 AI가 허위 정보를 제공했을 때의 처리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두 전문가 모두 AI의 기술적 발전이 인간의 자율성과 성장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