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핵융합 에너지 시장에 민간 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핵융합산업협회(FIA)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7월 기준 최근 1년간 핵융합 분야에 투입된 민간 투자액은 26억4000만 달러(약 3조8000억원)로 전년 대비 178% 증가했다. 유럽연합(EU) 퓨전포에너지 보고서는 민간 핵융합 시장의 누적 투자액이 130억 유로(약 22조원)로 2020년 대비 8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OpenAI) CEO가 투자한 미국 스타트업 헬리온(Helion)은 6월 4일 시리즈G 라운드에서 4억6500만 달러(약 7194억원)를 조달해 기업가치 155억 달러(약 24조원)를 인정받았으며, 2028년 상용 핵융합 발전소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융합은 원자핵을 쪼개는 핵분열과 달리 가벼운 원자핵을 합쳐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다. 장치에 문제가 생기면 반응이 즉시 멈추는 특성 탓에 대형 사고 위험이 원리적으로 낮고, 처리가 까다로운 고준위 폐기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만 반응을 일으키려면 입자를 1억도가 넘는 초고온 플라즈마로 만들어 자기장 안에 가둬야 하는데, 이 통제가 워낙 까다로워 상용화 시점이 빨라야 2040년대로 점쳐져 왔다. 이 때문에 한국의 KSTAR나 35개국 공동 프로젝트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등 핵융합 연구는 오랜 기간 정부 주도로만 진행돼 왔다. 그러나 생성형 AI 확산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4년 41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45TWh로 약 2.3배 늘어날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망하면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과 원자력의 사회적 거부감을 동시에 피할 수 있는 핵융합이 차세대 전력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간 자본이 유입되면서 상용화 목표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분리 독립한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스(CFS)는 지멘스(Siemens)·엔비디아(NVIDIA)와 협력해 2030년대 초 상용 발전소 ‘아크(ARC)’ 가동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5월 말에는 독일의 포커스드에너지(Focused Energy)와 미국의 테아에너지(Thea Energy)도 각각 2억4000만 달러(약 3713억원)와 1억 달러(약 1547억원)를 유치했다. 박종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CFS의 상용화 성공이 “핵융합 업계 전체의 상용화 시간표를 앞당기는 데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도 올해 핵융합 국가 R&D 예산을 1124억원으로 책정해 전년(564억원) 대비 99% 늘렸고,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K-문샷’ 프로젝트에도 핵융합 과제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민간 생태계가 미국·유럽에 비해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과제로 꼽는다. 김영철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유럽처럼 정부가 민간과 공동으로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더 많은 민간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제언했다. AI가 촉발한 에너지 병목이 핵융합 상용화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변수로 작용하는 가운데, 한국이 이 전환점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