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AI법(AI Act)이 2026년 8월 2일 본격 발효를 앞두고 유통 업계에서 뜻밖의 법적 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핵심은 AI법이 ‘딥페이크(deepfake)’ 표시 의무를 규정하면서 그 정의를 지나치게 넓게 잡아, AI로 생성한 광고용 제품 이미지까지 표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해석 문제다. 아마존, H&M, 인디텍스(자라 모회사), 이케아 등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유럽 유통업 단체 유로커머스(Eurocommerce)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며 EU 기술 담당 집행위원 헤나 비르쿠넨(Henna Virkkunen)에게 서한을 보내 면제를 요청했다. 발효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도 집행위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있어 업계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EU AI법은 AI로 생성 또는 변형된 이미지·음성·영상에 해당하는 딥페이크 콘텐츠에 명확한 표시를 달도록 요구한다. 기본 AI 아이콘, ‘완전 AI 생성(Fully AI-generated)’ 표시, ‘부분 AI 수정(Partially AI-modified)’ 표시 등 세 가지 체계가 있다. 문제는 소파 제품 사진을 AI로 생성해 광고에 쓴 경우도 딥페이크 범주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 조문이 ‘기만성’이나 ‘사람을 사칭하는 목적’을 필수 요건으로 명시하지 않아 소비자 기만 의도가 없는 상업 광고 이미지도 같은 기준에 묶이게 됐다.

패션 플랫폼 잘란도(Zalando)는 현재 마케팅 콘텐츠의 90%가 AI로 생성된다고 밝혔다. 잘란도의 콘텐츠솔루션 부문 부사장 마티아스 하세(Matthias Haase)는 AI 덕분에 광고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수 주에서 수일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H&M과 자라도 AI 모델 클론을 활용한 이미지를 제작하고 있다. 이 모든 콘텐츠가 딥페이크 표시 대상이 될 경우 업계 전반에 막대한 준수 비용이 발생한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수십만 개 상품 이미지 전체에 표시를 부착하는 운영 부담과 함께,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AI 생성 이미지 활용 자체를 줄여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이 논란에는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한다. 한편에서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AI 생성 광고 콘텐츠의 투명성 의무를 피하기 위해 법적 허점을 찾고 있다는 ‘규제 완화 로비’로 읽는다. 특히 H&M과 자라가 실제 사람처럼 보이는 AI 모델 클론을 이미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더욱 민감하다. 반면 현행 정의가 지나치게 광범위해 입법 취지 자체를 흐린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기만이 없는 상업 광고에까지 딥페이크 낙인을 찍으면 소비자들이 정작 위험한 딥페이크를 구별하는 데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EU 집행위는 아직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어 8월 2일 발효까지 업계의 혼선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 유통 및 광고 업계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AI 생성 제품 사진이 일반화되는 추세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AI 생성 광고 콘텐츠에 대한 별도 표시 지침을 아직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EU AI법의 딥페이크 표시 기준이 어떻게 정착하느냐는 향후 한국 정부의 유사 규제 설계에도 참고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만적 딥페이크’와 ‘상업적 AI 생성 이미지’를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정의 작업이 선행돼야 실효성 있는 규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EU의 혼란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