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 8일 연례 개발자회의 WWDC에서 2년간 미뤄온 고급 AI 음성 비서 ‘시리 AI’를 공개했지만, 현재 사용 중인 아이폰 상당수가 이 기능을 이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로이터가 인용한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적인 애플 인텔리전스 쿼리를 실행할 수 없는 기기가 8억 5,000만 대를 넘으며, 13억 대 이상의 아이폰에서 시리 AI를 구동할 수 없을 것으로 추산된다. 애플 공식 사이트는 시리 AI 지원 기기를 아이폰 15 프로, 아이폰 15 프로 맥스, 아이폰 16 이상 모델로 한정하고 있다.
핵심 장벽은 메모리 사양이다. 시리 AI 구동에는 최소 12GB D램이 필요하지만, 구형 아이폰 대부분은 8GB를 탑재하고 있다. AI 붐으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기업들이 공급가를 인상하고 있어, 애플이 기기 전반의 메모리 사양을 빠르게 높이는 데도 비용 부담이 따른다. 애플은 4월 실적 발표에서 메모리 가격이 이미 원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음 분기부터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라마겟돈(RAMageddon)’이라고 부른다. 램(RAM)과 세계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성한 용어로,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표현한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JP모건 보고서는 아이폰 제조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내년 최대 4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약 10% 수준임을 고려하면 4~5배에 달하는 급등이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에서 칩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도 가격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웬델 황 최고재무책임자(CFO)는 BBC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에 따른 비용 상승을 인정하면서도 급격한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AI 서비스 확산을 위해 디바이스 메모리 사양을 끌어올려야 하는 애플과, 공급 부족으로 가격을 높이는 메모리 업계 사이의 긴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