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인프라 확장이 에너지 산업의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자동차·발전 장비 등 기존에 에너지 공급과 무관하던 대기업들이 전력 공급·저장 사업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와 수주 실적이 유례없는 속도로 치솟는 가운데, 에너지를 단순한 비용 항목이 아닌 사업 기회로 재정의하는 움직임이 미국을 중심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포드는 2026년 5월 초 에너지 저장 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 ‘Ford Energy’를 설립하고 2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AI 데이터센터와 대규모 전력 사용 시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에너지 저장 솔루션을 공급할 계획이다. 전력 장비 제조사 GE베르노바(GE Vernova)는 2026년 1분기에만 데이터센터용 전기 장비 주문 24억 달러를 확보했는데, 이는 전년도 같은 부문의 연간 판매 실적과 맞먹는 규모다. GE베르노바 주가는 연초 대비 60% 상승했다. 연료전지 전문기업 블룸에너지(Bloom Energy)의 주가는 지난 1년간 1,200% 이상 급등했고, 지열발전 스타트업 페르보에너지(Fervo Energy)는 2026년 5월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투자사 Cloverleaf Infrastructure의 공동창업자 브라이언 자누스(Brian Janous)는 모든 기업이 어느 정도는 에너지를 핵심 투입 요소로 의존하거나 거대한 사업 기회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수요 급증 속에 불안 신호도 동시에 감지된다. 2026년 1분기 데이터센터 사업 취소 건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취소된 프로젝트에 묶인 누적 투자액이 4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주요 원인은 수자원 이용, 대기오염, 소음 등을 이유로 한 지역 주민의 반발이다. 부동산 데이터센터 기업 Digital Realty의 앤디 파워(Andy Power) 최고경영자는 “전력 신청이 쏟아지면서 전력회사들이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를 추려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요와 공급 모두 빠르게 늘지만, 인허가·주민 수용성·전력망 확충 속도가 병목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에너지·전력 산업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전력,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전력 설비 기업의 역할과 수주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SK E&S 등 에너지 사업을 겸하는 대기업들도 AI 전력 수요를 신규 사업 기회로 검토할 여건이 조성됐다. 포드의 Ford Energy 사례처럼 제조·기술 기업이 에너지 공급망에 직접 편입되는 추세가 한국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있으며, 전력 확보 역량이 기업의 AI 경쟁력을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