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를 상대로 미공개 하드웨어 제품의 영업비밀을 조직적으로 빼돌렸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소장에서 오픈AI가 자사 직원을 대거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조율된 캠페인”을 벌여 미출시 제품에 관한 기밀 정보와 부품, 도면 등을 넘겨받았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배심원 재판과 함께 해당 관행의 중단, 탈취한 모든 자료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소장에는 강도 높은 표현이 담겼다. 애플은 “기술직 직원부터 하드웨어 최고책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층위에서, 사업 파트너와 공조해 오픈AI가 애플의 영업비밀과 기밀 정보를 훔쳐 왔다”고 적었다. 이어 오픈AI의 초기 하드웨어 사업이 “부정하게 취득한 영업비밀에 불법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그 근간부터 썩어 있는, 가장 부실한 토대 위에 놓여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픈AI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회사 대변인은 타사의 영업비밀에는 관심이 없으며 자체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400명 넘는 전직 애플 직원, 오픈AI로
소송의 중심에는 오픈AI 하드웨어 최고책임자인 탕 탄(Tang Tan)이 있다. 그는 애플에서 제품 디자인 부사장으로 아이폰과 애플워치, 에어팟 개발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애플은 그가 채용 면접 과정에서 지원자들에게 애플의 차기 제품 정보를 공유하도록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전 아이폰 하드웨어 엔지니어 창 류(Chang Liu)도 피고에 이름을 올렸다. 애플은 그가 올해 1월 오픈AI에 합류하며 수 주에 걸쳐 미출시 제품과 기술 사양, 프로젝트 데이터가 담긴 기밀 파일 수십 개를 내려받았다고 밝혔다. 애플 스마트 글래스와 비전 프로 부문을 담당하던 폴 미드(Paul Meade)도 지난달 오픈AI로 옮겼다.
소장에 따르면 400명 넘는 전직 애플 직원이 현재 오픈AI에서 일하고 있다. 애플은 오픈AI가 퇴사를 앞둔 직원들에게 새 고용주를 밝히지 말고, 2주 통보 기간 동안 기밀 데이터 접근 권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곧바로 퇴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요구하는 구제책은 강도가 세다. 관행을 중단하고 모든 독점 자료를 폐기하며, 애플 기술이 전혀 포함되지 않도록 제품을 재설계하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손해배상을 넘어 오픈AI의 하드웨어 개발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요구다.
협업에서 법정으로…하드웨어를 둘러싼 충돌
이번 소송은 오픈AI의 하드웨어 진출에서 비롯됐다. 탕 탄은 2024년 애플을 떠나 전 애플 디자인 총괄 조니 아이브(Jony Ive), 베테랑 에번스 행키(Evans Hankey)와 함께 AI 기기 스타트업 io 프로덕츠를 공동 창업했다. 오픈AI는 지난해 이 스타트업을 65억 달러에 인수했다. 다만 아이브와 행키는 이번 소송의 피고에 포함되지 않았다.
두 회사의 관계가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2024년 6월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양사는 긴밀한 협력을 발표했고, 챗GPT는 애플 인텔리전스에 통합됐다. 오픈AI는 큰 기대를 걸었지만 이 협업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애플은 시리(Siri) 고도화를 위해 구글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때 파트너였던 두 회사가 인력 이동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맞붙게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은 AI 업계의 인재 확보 경쟁이 얼마나 격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드웨어 설계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축적된 공정 노하우와 부품 협력망이 핵심 자산이라, 관련 인력의 대규모 이동은 곧 기밀 유출 논란으로 번지기 쉽다. 400명이라는 숫자가 사실이라면 이는 개별 이직을 넘어 조직적 인력 흡수에 가깝고, 애플이 “조율된 캠페인”이라는 표현을 쓴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법적으로 영업비밀 침해를 입증하려면 단순히 전 직원이 많이 옮겨갔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 기밀 파일의 부정 사용을 특정해야 한다. 애플이 창 류의 파일 다운로드 정황을 소장에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픈AI 첫 기기, 2027년으로 미뤄져
오픈AI 하드웨어가 언제 어떤 형태로 나올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말 소프트웨어와 프라이버시, 인프라 측면에서 상당한 난관에 부딪힌 것으로 전해졌다. 오픈AI는 애초 예고했던 ‘io’ 브랜드를 폐기하고, 첫 기기가 2027년 2월 말 이전에는 출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늦춰진 일정이다.
내부적으로 오픈AI는 여러 형태의 기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갖춘 펜 형태 기기(코드명 ‘검드롭’), 스마트 헤드셋, 화면이 없는 스피커 등이 거론된다. 다만 첫 대량 판매 제품은 오히려 스마트폰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분석가 밍치궈는 오픈AI가 미디어텍, 퀄컴, 럭스쉐어와 협력해 2027년 상반기 양산이 가능한 기기를 개발 중이며, 이 기기가 음성 명령으로 사용자가 조작하는 AI 에이전트로 제어된다고 전했다. 애플의 소송이 이런 하드웨어 로드맵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될 경우 제품 재설계 요구가 현실화될 수 있어, 오픈AI의 하드웨어 사업 전반이 지연되거나 방향을 수정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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