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네트워크 장비를 팔아온 시스코가 AI 에이전트 시대를 겨냥한 기업 인프라 통합 플랫폼을 공개하며 사업 구조 전환을 선언했다. 시스코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연례 콘퍼런스 ‘시스코 라이브’에서 통합 플랫폼 ‘시스코 클라우드 컨트롤(Cisco Cloud Control)’을 발표했다. 네트워크·보안·컴퓨팅·관측(옵서버빌리티)·협업 기능을 하나의 로그인, 하나의 화면으로 묶어 AI 에이전트와 사람이 함께 기업 인프라를 운영·방어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플랫폼의 핵심은 자연어 기반 ‘대화형 운영’이다. 기존에는 네트워크 관리자들이 제품별 관리 화면에 각각 접속해 상태를 점검해야 했으나, 이제는 대화창에 “우리 회사 VPN에 무슨 문제가 있나”라고 입력하면 방화벽·스위치·보안 장비 상태가 한 화면에 펼쳐진다. 코딩 지식이 없어도 AI 에이전트와 앱을 만들 수 있고, AWS·서비스나우·슬랙 같은 외부 도구와도 연동된다. 실제 네트워크와 동일하게 복제한 ‘디지털 트윈’ 환경에서 해결책을 시험한 뒤 현장에 적용하는 구조도 도입됐다. AI가 이상 징후를 찾아 원인을 분석하고 조치 방안까지 제시하지만 최종 승인은 사람이 쥔다.

보안 분야에서는 ‘라이브 프로텍트(Live Protect)’ 기능이 눈길을 끌었다. 시스템을 중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약점을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기술로, 시스코는 AI 발전으로 취약점 발견부터 실제 공격까지 걸리는 시간이 수주 단위에서 수분 단위로 줄었다고 진단했다. 2026년 말까지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미래 공격에 대비하는 차세대 암호체계를 주요 제품 대부분에 적용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번 전환의 핵심 자산은 2024년 280억 달러에 인수한 데이터 분석·보안 기업 스플렁크(Splunk)다. 지난 회계연도(FY2025) 매출 567억 달러를 기록한 시스코는 스플렁크로 확보한 데이터·관측 역량을 네트워크·보안과 결합해 구독형 소프트웨어 모델로 전환하려는 포석을 깔고 있다.
경쟁 구도 측면에서 시스코의 도전은 결코 쉽지 않다. AI 인프라 통합 플랫폼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AWS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도 유사한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시스코의 강점은 기업 온프레미스(사내 구축형) 환경과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십 년간 축적된 기업 고객 신뢰다. 구독형 전환이 성공할 경우 수익성은 개선되겠지만, 기존 장비 매출 감소를 상쇄하는 데까지 걸리는 전환 기간이 투자자들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 입장에서 이번 발표는 기업 IT 운영 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로 읽힌다. 대기업 IT 인프라를 담당하는 SI 기업들은 자연어 기반 통합 운영 환경이 확산되면 기존 복잡한 다중 관리 화면 체계를 단순화하고 인력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반면 지금까지 장비별 전문 운영 인력에 의존해 온 IT 운영 조직은 역할 재정의를 요구받게 된다. 지투 파텔 시스코 제품 총괄 사장은 “AI 에이전트는 소프트웨어 속도로 끊임없이 추론하고 행동한다”며 “이것이 인프라를 운영하고 방어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비 회사가 플랫폼 회사로 변신에 성공하는 사례가 될 것인지는 향후 2~3년이 결정적 분수령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