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반복 훈련을 충분히 거치면 뇌가 스스로 처리 회로를 재편해 진정한 의미의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조지타운대 의대, 카네기멜론대, 존스홉킨스 응용물리학 연구실, 리하이대가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국제 학술지 ‘인지 신경과학 저널(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 6월 4일자에 발표했다. 지금까지 과학계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도 실제로는 뇌가 두 과제 사이를 빠르게 교차 처리하는 것이라고 봐왔는데, 이번 연구는 그 통념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컴퓨터 그래픽으로 미세하게 변형된 자동차 이미지를 두 범주로 분류하는 과제를 부여했다. 참가자들은 모바일 앱을 통해 5~10주에 걸쳐 3만 회 이상 이 작업을 반복했고, 연구팀은 훈련 전후에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뇌파(EEG) 검사로 뇌 활성화 부위를 비교 분석했다. 과제를 처음 익힐 때는 고차원 사고와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이 주로 활성화됐다. 이 영역은 통상 한 번에 하나의 과제만 처리할 수 있는 병목 구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 주간의 반복 훈련 뒤에는 기억 부호화와 복잡한 사물 인식을 담당하는 측두엽 피질이 활성화되는 패턴으로 바뀌었다. 연구팀은 충분한 훈련이 측두엽에 기존에 없던 범주 선택성 영역을 사실상 새로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메커니즘의 핵심은 전두엽 병목의 우회다. 학습이 무의식적 자동 처리 단계에 이르면 과제 수행이 전전두엽을 거치지 않고 측두엽에서 곧바로 뇌 출력 영역으로 연결된다. 그 결과 전전두엽의 처리 용량이 다른 과제를 위해 비워지고, 이것이 두 가지 일을 실질적으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신경학적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엑스레이 이미지에서 종양의 양성·악성 여부를 거의 자동으로 빠르게 판별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연구를 이끈 막시밀리안 리젠후버 조지타운대 신경과학 교수는 뇌가 기존에 습득한 기술을 측두엽으로 넘겨 전전두엽 공간을 비운 뒤 그 공간을 새로운 학습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인공지능(AI)의 학습 구조와 비교되는 지점에서 특히 주목받는다.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AI 모델에는 인간처럼 학습된 기술을 별도 회로로 이전해 처리 용량을 확보하는 메커니즘이 없다. 인간은 이미 익힌 기술을 자동화 회로로 위임하고 전두엽 자원을 새로운 과제에 재투자할 수 있지만, AI 모델은 각 과제에 동일한 처리 자원을 반복 동원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리젠후버 교수는 이번 연구가 뇌의 학습 방식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진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전에 배운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쌓아 올리는 연속 학습 AI 개발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박적 행동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활용 가능하다는 연구팀의 분석이 함께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