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Claude), 런웨이(Runway), 퍼플렉시티(Perplexity), 매너스(Manus) 등 다수의 AI 기업이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제품 UX에 세리프(serif) 서체를 도입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베이 에어리어 출신 작가이자 타입 디자인 실무자 케야 바드가마(Keya Vadgama)는 이를 ‘AI의 세리프 르네상스’로 명명하며, AI 기업들이 차갑고 기계적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브랜딩 전략으로 분석했다. 그는 세리프가 캘리그래피에 뿌리를 두고 있어 인간적이고 유려한 서체 제작 방식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했다.
이 흐름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세리프 서체 선택이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신뢰 형성의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온타리오 예술·디자인 대학 그래픽디자인학과장 알리 사드 카디르(Ali S. Qadeer)는 클로드가 책 페이지를 연상시키는 약간 갈색 배경과 세리프 서체를 조합해 인쇄 매체의 느낌을 의도적으로 구현했다고 짚으면서, 인쇄물이 지닌 신뢰 연상 효과를 AI 제품에 투영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미국 영국 신문 더 타임스(The Times)를 위해 1930년대에 설계된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은 수십 년간 학술서·백과사전의 표준 서체로 쓰이며 권위와 박식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미 국무부도 최근 칼리브리(Calibri) 대신 타임스 뉴 로만으로 공식 서체를 교체했다고 알려졌다.


반면 이 추세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I 기업들의 세리프 전략을 표면적으로 세련되어 보이려는 ‘테이스트슬롭(tasteslop)’이라고 비꼬거나, 이해 없이 감각적인 폰트를 쏟아내면 오히려 AI 슬롭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디자이너 이청(Yitong Zhang)은 이 현상을 청소년기에 다양한 폰트를 실험하는 것에 비유하며, AI가 설계 성숙 단계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시행착오라는 중립적 시각을 제시했다. AI 모델이 서로의 출력을 학습 데이터로 삼는 순환 구조 때문에 세리프가 세리프를 낳는 자기 강화 흐름도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드가마는 세리프 서체를 쓰더라도 기업이 여전히 AI 회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타이포그래피는 신뢰의 환상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신뢰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AI 기업들의 브랜드 전략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폰트 선택이 진정한 사용자 신뢰로 이어지는지는 제품의 실제 가치와 윤리적 운영 방식이 함께 뒷받침될 때 비로소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