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이 AI를 규율하는 여느 개발도상국과 다른, ‘지렛대를 쥔 예외’라는 분석이 나왔다. 행동에 나설 시간 여유는 빠르게 줄고 있다. 남아공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공급망의 핵심 원료인 백금족 광물 매장량의 약 88%를 보유하고, 아프리카 대륙 최대 데이터센터 시장을 가졌다.
기존 하이퍼스케일러와의 관계 덕에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가 갖지 못한 조달 협상력도 있다. 게다가 한 대륙의 공공부문을 떠받칠 시스템을 두고 중국과 미국 기술기업이 남아공 땅에서 지금 경쟁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백금족 매장지 ‘부시벨드 복합체’가 그 지렛대의 받침점인 셈이다.
문제는 그 힘을 쓸 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분석은 물리학의 지레에 빗대 받침점(광물), 지렛대 팔(정책 초안), 힘을 가하는 지점(정책의 미해결 조항)이 모두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장 접근의 대가로 무엇을 받을지 명시하지 않은 채 정책 초안이 철회되면서, 지렛대 팔은 쓰이지 못하고 두 거대 기술 생태계의 무게만 누르고 있다.

백금족 금속은 반도체 공정과 데이터센터 설비 곳곳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남아공이 이를 무기로 “우리 시장과 광물을 내주는 대가로 기술 이전이나 현지 투자를 요구하겠다”고 명문화했다면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자원을 쥐고도 제도가 받쳐주지 못하면 그 가치가 흩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례는 자원 보유국이 AI 인프라 시대에 어떻게 협상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책 부재가 어떻게 그 기회를 날리는지를 보여준다. 핵심 광물과 공급망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자원·기술 자산을 협상 카드로 전환하려면 명확한 정책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