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Siri), 알렉사(Alexa), 코타나(Cortana)와 같은 주요 AI 어시스턴트가 여성형 목소리와 이름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온 관행이 AI 윤리 연구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응답하고 보조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역할에 여성성을 결부짓는 설계 선택은, 서비스직과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됐던 사회적 구조를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옮겨 온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AI에 성별을 부여하는 현상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 젠더 이분법이 기술 설계에 얼마나 깊이 내재화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는 지적이 있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에서 제시한 수행성(performativity) 개념, 즉 젠더가 반복적 행위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은 AI 연구에도 적용된다. 태어날 때 성별이 없는 AI가 이름과 목소리가 부여되는 순간 특정 젠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미국 브리검영대학교(BYU) 휘틀리연구소(Wheatley Institute)가 2025년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5분의 1이 AI 동반자와 낭만적 교류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성소수자 청년 사이에서는 AI 챗봇 사용률이 40%에 달하며, 이분법적 성별 구분 밖에 자신을 두는 청년층에서 그 비율이 더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는 젠더화된 AI가 일부 이용자에게 정체성 탐색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AI 설계가 사회 고정관념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는 국제 기구와 연구자들이 꾸준히 제기해 온 문제다. 유네스코(UNESCO)는 2019년 보고서에서 여성형 AI 어시스턴트의 순종적 설계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일부 제조사는 이후 성별이 명확하지 않은 AI 페르소나를 도입하기도 했다. 기술 기업들이 효율과 친숙함을 이유로 선택하는 젠더 코드가 실제로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누구를 주변화하는지는 설계 단계부터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어떤 AI를 만드는지는 결국 어떤 사회적 가치를 기술 안에 새기는지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AI 젠더 설계를 둘러싼 윤리 논의는 기술 정책과 규제 영역으로 점차 이동하는 추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