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AI 생태계를 산업 영역을 넘어 민간 소비까지 전방위로 확산시키는 동시에, 미국 주도의 AI 패권에 맞서는 별도의 국제 질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74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중국 증권당국은 AI 기업의 상장 지원 확대 방침을 공식화했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 설립을 서두르고 있으며, 각국이 동참해 AI를 공익에 활용하길 환영한다”고 밝혔다. 2030년 AI 선도국 건설을 내걸고 본격적인 장기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내수 시장 측면에서 중국 상무부 등 8개 부처는 스마트폰·가전·관광·물류·노인 돌봄·휴머노이드 로봇에 이르기까지 AI를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AI+소비’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은 내년까지 지능형 기기의 에이전트 AI 보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향후 5년간 2조 위안(약 450조 원)을 투입해 전국 AI 컴퓨팅망과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며, AI 핵심 산업 규모를 2030년 12조 6,000억 위안(약 2,500조 원)까지 키우겠다는 장기 목표도 내걸었다. 딥시크는 미국 오픈AI의 GPT-4급 성능을 훨씬 낮은 비용으로 구현한 모델 ‘R1’을 공개하며 글로벌 AI 시장에 충격을 준 바 있으며, 이번 74억 달러 투자 유치 완료 소식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중국 AI 기업에 대한 투자 관심이 여전히 높다는 신호다.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 설립 구상은 이번 중국의 행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AI 기술 개발을 넘어 국제 AI 거버넌스의 주도권을 미국에서 빼앗아 오겠다는 전략적 의도로 읽힌다. 미국·EU·영국이 공동으로 AI 안전 기준을 만들어가는 흐름과 충돌할 경우, AI 생태계가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으로 분리되는 기술 블록화(Tech Bloc)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전 세계 AI 서비스의 연결성과 상호운용성에 구조적 제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방향이다.
낙관론과 신중론이 동시에 존재한다. 낙관론 측에서는 중국의 대규모 AI 투자와 소비 시장 확대가 AI 반도체·소재·부품 수요를 늘려 글로벌 AI 공급망 전체에 긍정적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신중론 측에서는 중국 AI 생태계의 폐쇄성, 데이터 주권 문제, 군사·감시 기술과의 연계 가능성이 글로벌 AI 협력의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이 엔비디아 고성능 GPU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유지하는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중 AI 패권 경쟁이 격화될수록 전략적 선택의 압박이 커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수출 규제와 중국 시장 수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 세계AI협력기구와 같은 새로운 국제 기구가 실제로 발족할 경우 참여·비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외교적 딜레마에도 직면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이 각각 자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표준·기술·시장이 분리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 아니면 상호 의존과 경쟁이 공존하는 형태로 수렴할 것인지는 향후 수년간의 지정학적 흐름에 달려 있다.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든 그 결과는 반도체·클라우드·AI 서비스 전 분야에 걸쳐 국내 기업과 정책 당국 모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