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AI 시대의 미래 승패는 AI를 구동하는 소재와 부품에 달려 있다”고 언급한 것을 계기로, 업계의 관심이 HBM(고대역폭메모리) 다음 세대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추격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차세대 메모리와 패키징 기술까지 선점하려는 구상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발언의 배경에는 대규모 투자 계획이 깔려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자리에서 충청 일대를 IT 소재·부품 거점으로 키우겠다며 140조원 규모의 투자안을 내놨다. 돈이 흘러갈 곳은 최첨단 디스플레이와 HBM, AI 서버용 패키지 기판, 차세대 배터리 등으로 폭이 넓다. 이 가운데 HBM 생산기지 확충에는 온양·천안에 56조원이 투입되고, 계열사 삼성전기는 세종의 AI 서버용 패키지 기판 라인을 증설한다. 삼성전기가 최근 유리기판 핵심 소재 합작법인 설립에 뛰어드는 등 AI 반도체 생태계 곳곳으로 투자 반경을 넓히는 움직임과도 궤를 같이한다.

업계가 정작 눈여겨보는 것은 투자 규모보다 이 회장의 이 발언 자체다. HBM 생산능력을 늘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이후의 반도체 판도까지 내다본 포석이라는 해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때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 고대역폭플래시(HBF)다. 낸드플래시를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리는 이 메모리는 D램을 쌓는 HBM과 계보가 다르며, 방대한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 AI 추론 서비스가 늘수록 용량과 전력 효율 양쪽에서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가 샌디스크와 손잡고 HBF 표준을 만드는 작업에 나섰고, 삼성전자 역시 관련 특허를 꾸준히 쌓으며 자체 기술을 벼려 온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격전지로는 연산과 저장을 한 몸에 담는 로직메모리가 지목된다. AI 칩의 처리 능력을 끌어올리려면 메모리와 연산이 지금보다 더 가깝게 붙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름이 잡히고 있는데, 시스템LSI와 메모리를 한 지붕 아래 두고 있는 삼성전자가 이 지점에서 남다른 카드를 쥘 수 있다는 시각이다.
HBM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AI 반도체의 중심을 지킬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적다. 그럼에도 무게추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넘어가는 국면에서 HBM 하나로는 감당하기 벅찬 용량·전력 과제가 뒤따르는 만큼, 이를 메울 차세대 기술을 둘러싼 각축이 곧 달아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이 회장은 충청권 투자 청사진을 밝히며 “AI 시대의 미래 승패는 AI를 구동하는 소재와 부품에 달려 있기 때문에 삼성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