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외국인의 최신 AI 모델 접근을 제한하거나 지연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유럽 내 AI 주권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오스트리아 디지털화 담당 국무장관 알렉산더 프뢸은 EU 기술주권 담당 집행위원 헨나 비르쿠넨에게 서한을 보내 앤트로픽(Anthropic)의 본사를 유럽으로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프뢸은 서한에서 “하룻밤 새 4억 5,000만 명 규모의 EU 단일 시장이 첨단 혁신에서 차단됐다”고 비판하며 앤트로픽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프뢸이 앤트로픽을 택한 이유는 해당 기업이 AI 안전을 마케팅 수단이 아닌 핵심 철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기업은 유럽에서 제약받지 않고 오히려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앤트로픽은 미국 국방부와의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NSA에도 모델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중심 기업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복적 기조를 감안하면 이 제안은 더욱 실현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중국 AI 모델을 대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AI 투자자 샤오인 취는 유럽 기업들이 중국 오픈소스 모델을 자체 GPU에서 구동하고 자체 데이터로 파인튜닝하면 일정 수준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워싱턴 의존을 베이징 의존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오픈소스 모델은 라이선스 조건이 언제든 변경될 수 있고, 최신 모델 제공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취는 중국 모델이 화웨이 칩에 최적화되면 미국이 모델과 칩 양 층위에서 모두 뒤처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언급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유럽 자체의 AI 인프라 구축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OpenAI와 앤트로픽 등 미국 AI 기업들은 유럽 매출에 의존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모델 훈련 비용을 충당하므로, 유럽이 협상에서 완전히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여 년간 디지털 자립보다 미국 기술 의존을 심화해 온 정책 실패의 누적을 단기간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번 오스트리아의 제안은 구체적 실행 계획이라기보다 AI 종속 구조에 대한 유럽의 위기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