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형태의 웨어러블(Wearable) 기기인 스마트글라스(Smart Glass)가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서 부정행위·불법 촬영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기기 외형이 일반 안경과 거의 구별되지 않아 주변인이 촬영 여부를 즉각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 문제로 꼽힌다. 스마트글라스는 내장 카메라와 마이크로 시야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AI가 분석해 렌즈나 스피커로 답변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국내에서는 토익 시험장에서 스마트글라스를 이용한 커닝 시도가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한국토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10일과 31일 치러진 정기시험에서 각각 1건씩 스마트글라스를 활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해외에서는 더 심각한 사례도 보고됐다. 영국에서 한 남성이 스마트글라스로 여성을 동의 없이 촬영해 삭제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에서도 범인이 스마트글라스로 현장을 사전 답사한 사실이 수사 결과 드러났다. 메타(Meta)는 자사 스마트글라스 앱에 주변인 얼굴 인식·신원 식별 기능 코드(‘네임태그’)를 탑재했다가 비판이 일자 해당 코드를 삭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법제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자동화된 AI 기술이 웨어러블 기기와 결합될수록 개인정보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실시간으로 수집·처리된다며, 이런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보안 위협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이 대량 정보 처리 주체를 중심으로 규율하다 보니 개인 간 사생활 침해 행위를 규율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도 지목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스마트글라스 관련 사생활 침해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선제적 가이드라인 마련은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스마트글라스가 아직 기술 과도기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전 AI 전문기업 관계자는 현재 기기가 스마트폰과의 연동 의존도가 높다며 독자적으로 완전한 기능을 구현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현 수준의 스마트폰 연동만으로도 상시적인 시각 정보 수집이 가능해 악용 소지는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기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시민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