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적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창업자 크리스 올라가 교황청의 역사적 AI 회칙 발표 후 열린 행사에 연사로 섰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 회칙에서 기술을 ‘무장 해제’할 것을 촉구했는데, 무신론자이자 한때 가속주의적 기술 투자 사조와 연을 맺었던 올라가 이 자리에 오른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앤트로픽은 1조 달러에 가까운 기업가치로 상장을 앞둔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다.
올라는 연설에서 AI 기업 공동창업자의 입에서 나오기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며 운을 뗀 뒤, 앤트로픽을 포함한 모든 프런티어 AI 연구소가 때로는 옳은 일을 하는 것과 충돌하는 인센티브·제약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는 AI 업계에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절제가 모두 필요하다는 교황의 주장을 업계 내부자가 직접 확인해 준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레오 14세의 회칙 ‘마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는 업계가 모두에게 풍요를 안긴다고 낙관하는 것과 달리, 소수의 특권층만 막대한 부를 누리고 다수의 인류는 효율과 감시의 체제 아래 고통받는 새로운 형태의 노예 상태를 경고한다. 회칙은 AI 개발을 곧장 멈춰 세우려는 문서가 아니라, 업계의 무모한 야심을 누그러뜨릴 대화를 일으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환경 보호를 호소한 회칙이 화석연료 생산을 멈추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회칙도 단번에 산업의 방향을 바꾸기보다 기술을 만드는 이들에게 성찰을 촉구하는 신호로 읽힌다.
교황청은 수십 년간 인공지능을 사유해 왔다. 2016년부터는 ‘미네르바 대화’라는 회의를 열어 리드 호프먼, 에릭 슈밋 같은 기술계 인사를 초청했다. 이 명칭은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 제재받은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서 따온 것이다. 2025년에는 미국 산호세의 가톨릭 성직자·윤리학자 모임이 업계 접점을 찾아 나섰고, 비 오는 날 인도 위 지렁이를 구하는 성품으로 알려진 올라를 핵심 내부자로 점찍었다.
주목할 대목은 이 가톨릭 윤리학자들이 앤트로픽의 클로드 ‘헌법’ 최근 개정에도 의견을 냈다는 점이다. 클로드 헌법은 회사 AI 모델의 행동 기준을 규정하는 문서다. 올라가 초안을 보내자 산호세 측 목사는 28쪽 분량의 논평을 회신했고, 두 윤리학자는 헌법 문서에 기여자로 이름을 올렸다. AI 거버넌스 논의가 규제 당국을 넘어 종교·윤리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은, 기술의 사회적 정당성을 고민하는 국내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