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거버넌스 논의가 세 가지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6월 2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첨단 인공지능 혁신 및 안보 증진’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의 핵심은 프론티어 AI 모델 출시 전 최대 30일간 연방정부가 국가안보 및 사이버보안 위험을 평가할 수 있도록 AI 기업이 자발적으로 접근권을 제공하는 협력 체계다. 기업 허가나 의무 라이선스를 강제하지 않는 자율 참여 방식으로, 미국 연방 차원에서 처음으로 실질적 효력을 갖춘 AI 안전 검증 프레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연합(EU)에서는 규제 완화 방향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EU 의회와 이사회는 지난 5월 ‘디지털 옴니버스(Digital Omnibus on AI)’에 잠정 합의하며, 올해 8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던 고위험 AI 규제를 독립형 시스템의 경우 2027년 12월, 제품 내장형의 경우 2028년 8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인 EU AI법을 도입한 유럽도 과도한 규제가 자국 AI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일정을 조정한 것이다. 한편 교황 레오 14세의 최근 회칙은 AI를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며, AI가 인간의 책임과 윤리적 판단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세 사건이 공통으로 시사하는 점은 AI 거버넌스의 중심축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드론 통제, 표적 식별, 사이버 공격·방어 등 안보 영역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규제보다 경쟁력을 앞세우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동시에 강력해진 AI 능력에 대한 윤리적·안보적 통제 요구도 커지고 있어, 각국은 혁신 촉진과 위험 관리를 병행하는 설계를 모색하는 중이다. 미국은 안보·사이버 위협의 사전 검증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광범위한 규제 도입은 유보하는 절충 노선을, EU는 기존 규제법 적용 시기를 늦추는 방식으로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재 AI 기본법 규제 조항의 시행이 유예된 상태에서, 미국과 EU의 동향은 유예 기간 연장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안전과 혁신의 균형이라는 기존 논의 틀을 넘어 ‘안보·경쟁력·윤리’ 세 축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