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대신 읽고 요약해 주는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원문을 끝까지 읽지 않고 요약본만 훑는 ‘스캐닝 소비’가 세대를 불문하고 고착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4년 11월 기준 챗GPT(ChatGPT) 등 주요 AI 앱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고, MS(마이크로소프트) AI 경제연구소는 가까운 미래 전 세계 근로자의 16.3%가 생성형 AI 도구를 업무에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글·MS 등 글로벌 빅테크는 검색 엔진 최상단에 AI 요약을 기본으로 탑재하며 이런 흐름을 가속하고 있다.
스캐닝 소비의 부작용이 실증 데이터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미디어랩 연구진은 대학생들이 에세이를 작성할 때 AI를 활용한 그룹과 직접 작성한 그룹의 뇌 활동을 비교한 결과, AI 의존 그룹에서 전두엽(前頭葉)과 두정엽(頭頂葉) 사이 신경 네트워크 연결성이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AI를 이용한 그룹 다수가 에세이 완성 직후 자신이 쓴 글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LLM(대규모 언어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스스로 논리를 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생략된다며 장기적인 사고력 및 학습 능력 저하를 경고했다. 해당 연구는 arXiv에 프리프린트(사전 인쇄본)로 공개된 것으로, 표본이 54명(일부 세션은 18명)에 불과하고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초기 결과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추세가 관찰됐다. 국내 인지심리학 및 뇌과학 학술대회에서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정보 탐색부터 요약까지 AI에 전적으로 의존한 피실험자는 스스로 정보를 정리한 이들보다 판단과 집행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활동이 뚜렷하게 낮아졌다.

당장 현실적 위협으로는 AI의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 꼽힌다. 현재 상용화된 LLM은 통계적으로 확률이 높은 단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장은 유창해도 원문의 미묘한 뉘앙스를 지우거나 인과관계를 반대로 뒤집는 오류를 낼 수 있다. 원본을 확인하지 않고 요약본만 소비하는 이용자는 이 왜곡을 걸러낼 수단이 없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서는 AI가 잘못 번역·요약한 해외 논문을 과제물로 제출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기업 현장에서도 경쟁사 재무 수치나 시장 보고서의 AI 요약본 오류를 사실로 받아들여 의사결정에 혼선을 빚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요약 서비스 경쟁에만 치중하면서 오류 방지와 편향성 통제를 위한 투명한 책임 규범 마련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다만 AI가 인지적 해악만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한림대 연구진 분석에서는 정교하게 설계된 생성형 AI 팩트체크 결과물이 인간 전문가의 판정보다 이용자의 확증편향을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직접적인 지적보다 기계의 중립적 판정이 감정적 방어기제를 덜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단 이는 팩트체크 기준과 알고리즘 설계 과정에 인간의 투명한 통제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AI를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터’ 수준으로 활용하되, 파편화된 정보를 종합해 사실을 판별하는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뇌가 담당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AI가 만든 왜곡에 속지 않으려면 질문을 먼저 던지고 원문과 대조하는 정보 소비자의 주체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