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정부가 인공지능(AI) 에이전트에 국가 차원의 고유 식별 번호를 부여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계약을 체결하며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AI 에이전트 경제’가 빠르게 확산됨에 따라, AI를 독립된 법적 주체로 인정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 고유 번호는 주민등록번호나 법인의 등기번호와 유사한 기능을 하며, AI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추적하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 구현으로 유명한 국가로, 이번 법안에서는 AI 에이전트가 버전 업그레이드를 거치더라도 고유 식별 번호는 변하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고유번호나 앱 회원 아이디가 변경되지 않는 원리와 유사하다. 크리스텐 미할 에스토니아 총리는 AI가 보고서 작성, 세무 신고, 정보 시스템 간 상호작용 등 복잡한 디지털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미래를 언급하며, “어떤 AI가 누구를 대리하고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지, 궁극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AI나 로봇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는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에 시민권을 부여했고, 일본 도쿄 시부야구는 2018년 자체 개발 AI 챗봇에 특별 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유럽연합도 2017년 자율형 지능 로봇을 ‘전자 인격’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들 사례는 주로 상징적 의미나 논의 수준에 머문 반면, 에스토니아의 이번 시도는 AI가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고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 차별화된다. AI가 독자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자산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과 금융 손실 문제는 아직 명확한 해결책이 없다. AI 식별 번호가 도입되면 AI 활동 기록을 분석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거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법적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시도를 AI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리하는 역할로 AI의 법적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한 식별 체계 구축으로 해석하며, AI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특성에 맞춰 유연한 식별 인프라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STORIU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