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AI 모델과 클라우드,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을 둘러싼 미국 빅테크 쏠림을 줄이고 자체 산업을 키우기 위한 입법 패키지를 내놨다. 한 축은 ‘클라우드 및 AI 개발법(CADA)’, 다른 한 축은 ‘칩스법 2.0(Chips Act 2.0)’이다. CADA는 데이터 민감도를 네 등급으로 나누는 체계를 새로 두고, 국방이나 의료처럼 가장 보안이 중요한 업무에서는 역외 기업의 공공 계약 참여를 사실상 막는다. 미국 클라우드법(Cloud Act)이 데이터 저장 위치와 무관하게 미 당국의 요청 시 자료 제출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유럽 공공 데이터가 미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 조치의 바탕에 깔려 있다. 현재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미국 3대 클라우드 사업자가 EU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집행위는 규제와 동시에 유럽 토종 클라우드 사업자를 키우기 위한 지원책도 함께 제시했다. 인허가 절차를 줄이고 전력 공급을 뒷받침해 2030년까지 역내 데이터센터의 처리 역량을 세 배 넘게 키운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쪽에서는 칩스법 2.0을 통해 유럽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지금의 두 배 수준인 2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고, 현지 전문가들은 정부 조달에서 유럽산 반도체를 우선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짜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병원과 전력망을 돌리는 기술을 더 이상 외부에 맡겨둘 수 없다는 취지로 이번 입법의 명분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안 발표와 같은 시점에 유럽의회는 의회 기본 검색엔진을 구글에서 프랑스 토종 검색엔진 콰앙(Qwant)으로 바꾸겠다고 밝혀, 기술 자립 기조가 선언을 넘어 실제 운영에 반영되기 시작했음을 드러냈다. 다만 이번 초안이 법으로 확정되려면 27개 회원국 전원 동의와 720석 규모 유럽의회 통과라는 관문이 남아 있어, 시행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중국이 AI를 앞세워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유럽이 독자 생태계 구축과 자국 시장 보호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는 점에서, 한국을 비롯한 비유럽 기업의 EU 공공 조달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신호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