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을 선도하는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4명이 AI 모델 고도화의 속도를 늦추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AI 기술 발전 과정에서 안전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무분별한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논의는 최근 내부 고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다. 앤트로픽과 오픈AI에서 사전학습(Pre-training) 연구를 담당한 제이콥 콕슨이 두 회사가 책임감 없이 초지능 개발에 몰두하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 발언이 공개된 후,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가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고,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데미스 하사비스 등도 이에 동참했다. 여기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까지 의견을 더하며 AI 안전성 논쟁은 정치권으로 확대됐다.
표면상 이번 속도 조절 요구는 통제 불가능한 AI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배경에는 빅테크 기업 간 천문학적 투자 경쟁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현실이 깔려 있다. 막대한 개발비용으로 인해 수익보다 지출이 더 커지는 상황에서, ‘속도 조절’이라는 명목 하에 공동의 규칙을 마련하면 자연스럽게 소수 기업 중심의 과점 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후발주자들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어 경쟁을 제한하는 전략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온실가스 감축을 명분으로 한 탄소장벽이 후발 산업국의 성장을 제한한 사례처럼, AI 안전평가 기준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국내 반도체와 AI 생태계에 새로운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AI 스타트업과 모델 개발 환경이 미국의 선도 모델과 클라우드 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서버용 D램 수요가 단기적으로 유지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소외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같은 속도 조절 움직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속도가 경쟁력의 핵심인 상황에서 AI 개발 속도를 늦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논의는 표면적으로는 AI 안전 문제지만, 그 이면에는 미중 기술 경쟁이라는 전략적 변수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이번 AI 안전 기준 논의가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논의가 선진국 중심의 시장 재편과 국내 산업의 종속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면밀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불필요한 규제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AI 산업 발전과 안전 확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글로벌 논쟁이 한국의 기술 경쟁력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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